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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되는 인간, 사용하는 구리 – 최원서 개인전 《생동》의 서문 (2023, 글 백필균)

 구리(銅, copper)는 지구상에 널리 분포하는 물질이다. 이 적갈색 금속은 신체에 헤모글로빈을 합성해서 산소를 운반하고 예술과 여러 산업에 갖가지 사물을 만드는 주된 재료로 사용되었다. 그 사용됨을 응시하는 최원서는 인류 문명이 구리를 사용한 전적과 반대로, 구리가 인간을 사용하는 전환을 모색한다. 역사와 문화가 사물을 폐쇄하는 관성에 작금의 시대가 저항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되묻는 움직임은 《생동》에서 위계화된 감각을 재배열하는 유머를 펼친다. 

 

 최원서는 느슨한 결정체인 금속에 압력을 가해 본래 그것이 균열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반쯤 눕고 반쯤 앉은 자세로 벽에 기댄 구리판은 왠지 피곤해보인다. 동일한 크기의 구리 원기둥 여럿을 촬영한 사진을 직렬로 잇는 형식은 이미지를 공간 격자에 따라 투명하게 배열하는 함수다. 구리 판에 특정 부위가 산화된 이미지가 복제와 이어붙이기로 흐른다. 금속을 결합하는 용접 기술과 성형하는 열풀림 기술을 참조하는 세포 증식 혹은 특정한 유기체 마디가 그 흐름에서 나타난다. 금속에 감정을 이입하고 나아가 그것이 존재하는 형식에 관성적 개입을 제한함은 인간중심주의 사고에 얽매이지 않는 일종의 해방으로 나아간다. 최원서의 유머 가운데 적갈색 금속에 잠재된 균열은 이미 진행 중이다.  

 

 같은 크기와 비율의 구리 원기둥 서른 세 개를 임의의 가열로 산화하는 작업은 구리에 내재된 또 다른 발화 창구를 연다. 그 결과 이미지를 일정한 판형의 종이쪽 묶음으로 엮는 책 제본은 물질의 다양한 표정을 겹겹이 쌓지만, 누군가는 그 앞과 옆에서 붉으락푸르락한 자기 얼굴이 산화된 구리와 유사한 상황을 곱씹으며 인간과 물질을 존재론적으로 더이상 구별하지 않는다는 성찰을 고백한다. 구리는 연성과 전성이 뛰어나 전선 제작에 널리 사용되는 금속이지만, 최원서의 작업에서의 구리는 전기 아닌 에너지를 생성하고 디지털 신호 아닌 신호를 전달한다. 새삼스럽게도 최원서는 구리와 닮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공공시설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고열 증상자의 적외선 에너지를 감지해 개인와 집단을 분리한 지난 방역의 기억을 최원서는 기억한다. 이어 그는 사물 4종과 신체가 접촉하는 행위를 열화상 동영상으로 기록한다. 열화상 카메라가 포착하는 시간에서 사물에게 체온을 전이하다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열을 식히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동안 인간이 점유하는 자리를 비인간의 몫으로 내주는 움직임은 감각의 위계를 재배열하는 의지이다. 의지가 표출하는 세계에서 영혼이 드나드는 경로로 구리와 최원서가 눈 마주친다.

↗《생동》(2023, 소현문,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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